"40년간 왕따 당하던 AI 연구" 노벨상 거머쥔 대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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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이도윤 기자
발행: 2025.08.23 17:21

기사 3줄 요약
- 1 AI 암흑기, 40년간 신경망 연구 외길 걸은 제프리 힌튼
- 2 DBN과 역전파 알고리즘으로 딥러닝 시대의 문을 열다
- 3 마침내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으로 공로 인정받아
인공지능(AI) 분야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가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AI를 이야기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그의 연구는 학계의 외면을 받는 외로운 길이었습니다. 40년간의 뚝심이 마침내 세상의 인정을 받은 셈입니다.
AI가 망했다고? 혼자서 파고들었다던데
AI 연구에 두 번의 기나긴 암흑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힌튼이 연구하던 '신경망' 기술은 여러 한계에 부딪히며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분야가 됐습니다. 많은 학자가 AI 연구를 포기하고 떠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힌튼 교수는 달랐습니다. 그는 AI가 인간의 뇌처럼 학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2006년, 그는 '심층 신뢰 신경망(DBN)'이라는 개념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며 꺼져가던 신경망 연구의 불씨를 되살렸습니다. 이 논문은 여러 겹의 신경망(심층 신경망)을 효과적으로 학습시키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누구도 풀지 못했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던진 것으로, 오늘날 딥러NING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연구로 평가받습니다.그래서 뭘 어떻게 바꿨다는 거야?
힌튼 교수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오류 역전파 알고리즘'을 널리 알린 것입니다. AI가 정답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거꾸로 되짚어가며 스스로 똑똑해지는 학습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AI는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학습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의 연구가 없었다면,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이미지 인식, 번역, 챗GPT 같은 기술은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연구는 2012년 세계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능으로 우승하며 마침내 진가를 증명했습니다. 이후 그가 제자들과 세운 회사는 구글에 약 580억 원에 인수되며, 딥러닝 기술의 상업적 가치를 세상에 알렸습니다.AI 대부, 근데 왜 미국을 떠났을까?
사실 힌튼 교수는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논리 연산의 기초를 만든 수학자 조지 부울의 후손이라는 화려한 배경을 가졌지만, 그의 연구는 오랫동안 주류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AI 기술이 전쟁 무기로 사용될 것을 우려해 미국을 떠나 캐나다로 이주하기도 했습니다. AI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먼저 경고한 양심적인 학자이기도 합니다. AI 암흑기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제프리 힌튼. 그의 외로운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AI 혁명이 가능했습니다. 그의 노벨상 수상이 더욱 뜻깊은 이유입니다.
편집: 이도윤 기자
이메일: aipick@aipic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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